헌법재판소의 사명

국회가 만든 법률의 효력을 헌법재판소가 상실시키는 근거는 국민의 기본권 침해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므로,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그 효력을 제거한다. 국회의 입법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로 법률의 효력을 잃게 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부나 범위에 다툼이 있을 때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헌법소송이다. 헌법재판소법 제62조는 제1호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 국회, 정부, 법원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을 언급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명시된 기관만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으므로 국회의 내부기관인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사이의 권한쟁의심판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노동법날치기 사건 때부터 견해를 변경하여 국회의장을 상대로 국회의원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사이에서 문제 되는 가장 중요한 권한은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다. 국회의장은 본회의에서 법안 심의와 표결이 끝나고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는 경우 가결을 선포하는데, 국회법상 규정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결선포한다면 국회의원의 법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된다. 이때 국회의원은 국회의장의 법안 가결선포행위가 자신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또 자신의 권한을 침해한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을 부정하여 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장의 가결선포행위가 무효라고 판단한다면 그에 의해 당해 법률의 효력도 인정될 수 없겠지만, 현행 헌법재판소법상 헌재가 청구인의 권한이 침해되었는지 확인하는 것과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한 피청구인의 행위를 효력을 없애는 것은 별개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1항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한다.

제2항 제1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취지에 따른 처분을 하여야 한다.

신문법안과 방송법안의 가결을 선포한 행위가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사실은 확인하지만, 가결선포행위가 무효라고 확인하지 않은 법적 근거가 바로 이 조항이다. 신문법안에 대한 판단을 보면, 권한침해는 확인하면서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지 않은 재판관은 네 명이다.

김종대는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을 때 그 침해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당해 법률을 폐기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권한쟁의심판의 심판대상은 ‘법률제정행위’이지 ‘법률’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어 권한쟁의심판에서는 4~5인의 찬성만으로도 법안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로 인정할 수 있는데, 이는 법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위헌결정의 정족수를 6인으로 규정한 헌법 제113조 제1항에 어긋나므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에 대한 사후의 조치는 오직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고 하였다.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6인 미만의 재판관의 찬성으로 법률의 효력을 부정할 수도 있는 문제점을 짚은 논문이 있었던 만큼(차진아, 권한쟁의심판과 위헌법률심판의 충돌에 관한 고찰, 헌법학연구 제15권 제1호, 2009년 3월) 가볍게 무시할 견해는 아니다.

이강국과 이공현은 헌법재판소법 제66조의 해석을 꾀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제66조 제1항의 권한의 존부나 범위 판단과 제66조 제2항의 권한 침해 원인의 무효 확인은 다른 문제이므로, 권한침해를 확인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권한을 침해한 원인행위의 무효를 확인할 필요는 없으며, 헌법재판소가 직접 다른 국가기관의 행위의 효력을 무위로 돌리려면 “권한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다. 법문상 이렇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허튼소리는 아니다. 더욱이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2항과 같은 규정이 없어서, 특정 국가기관의 처분이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확인하는 결정만 내리지, 다른 국가기관의 권한을 침해한 특정 국가기관의 처분에 효력이 없다고 결정하지 못한다. 연방헌법재판소가 권한 침해를 확인해 주었다면, 이를 바탕으로 국가기관끼리 알아서 해결하게 된다.

이동흡은 일부 국회의원의 권한이 침해되었더라도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경우”에만 그 법률안의 가결선포행위를 무효로 볼 수 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국회의원들의 본회의 개의 저지 및 의사방해행위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여 의사진행이 위법하게 되었고 청구인들의 권한 침해가 표결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가결선포행위의 하자는 경미한 수준에 그친다고 보았다.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 침해 상태를 제거할 임무를 국회에 맡긴 3인의 기각 의견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다른 국가기관보다 상위에 놓인 기관이 아니어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벗어나 다른 국가기관의 의사결정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위헌법률심사에서 위헌 결정을 하더라도 새로운 법률의 내용을 정할 수는 없다. 또 국가원수의 통치행위와 국회의 자율권에 대해서는 사법심사를 회피하여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고자 한다. 사법부가 다른 국가기관의 행위를 무효로 만든다거나 하여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면, 특정 당파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게다가 사법적극주의는 반작용을 부른다. 뉴딜법안에 잇달아 미국연방대법원이 위헌선언을 내리자 루스벨트가 연방대법관 정원을 늘리려 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집권기에 헌법재판소가 중요한 정책의 추진 여부를 결정짓자, 전효숙을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하려던 대통령의 시도를 야당에서 좌절시켰던 경우처럼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둘러싼 정치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직업 법관이 결정하게 되면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문제는 이번 결정에서 나타난 헌법재판소의 중립성이, 가장된 당파성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이었던 김승대는 <헌법 관습의 법규범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헌법재판소가 발간하는 헌법논총에 썼는데, ‘관습헌법의 변경은 성문헌법 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며 위헌결정문에서 제시된 법리의 자세한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김기창, 성문헌법과 ‘관습헌법’, 공법연구 제33집 제3호, 2005년 5월) 그 논거란 드골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프랑스 학자인 카피탕이 성문헌법이 불문의 헌법관습을 통해 변경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승대는 카피탕의 이러한 주장에서 관습헌법에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명제를 도출하여, 관습헌법 변경에도 성문헌법 개정절차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현재 프랑스 헌법학계에서는 사장된 소수설을 거꾸로 해석한, 세계에서 누구도 주장한 적 없는 조악한 이론을 창안하여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였고 입법부가 승인한 정책의 근거법을 엎어버린 꼴이다.

어떤 때에는 무리한 법리를 창조하면서까지 입법부의 정치적 결단을 무력하게 만들면서, 또 어떤 때에는 뒷짐만 지는 태도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고 있다기보다 당파성을 숨기려는 속셈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만 유효한 입법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확립할 호기였으며,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더라도 그 당파성을 의심받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이 헌법재판소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나, 사람들은 지금 헌법재판소가 과연 필요한 기관인지 의문을 품는다. 권한침해행위가 무효라고 확인하지 않으면, 권한침해확인은 실효성이 없다. 예링은 “강제력이 없는 법은 타지 않는 불이요, 비치지 않는 등불”이라고 말하였는데, 2009년 10월 29일 한국 국민은 타지 않는 불과 비치지 않는 등불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셈이다. 헌법을 ‘살아 있는 법’으로 만든 제9차 개정헌법 최고의 성과물인 헌법재판제도가 무용하게 여겨지는 비극은, 가결선포행위의 무효확인청구를 인용한 재판관들이 비분강개하게 표현하였듯 “모든 국가작용이 합헌적으로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할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한 재판관들이 초래하였다.

이번 결정은 1997년에 내려졌던 노동법날치기 통과 때 제기되었던 권한쟁의심판의 결론과 다르지 않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견해이며 당시 개정노동법에 도입되었던 정리해고제처럼 한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이었고 그럴 수록 신중한 합의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십 여년 전처럼 권한은 침해되었으나 권한을 침해한 행위의 무효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되풀이하여 안타깝다. 헌법재판소가 중립을 지키는 까닭은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는데, 실효성이 없는 공정성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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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北

“노련한 지배자는 신민들을 수동적이고 조직되지 못한 상태로 유지할 수도 있다. 소규모 지배 집단은 다양한 분할 통치 전략을 구사해 반란의 위협을 막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엘리트를 움직이는 유인들은 적극적인 시민들이 없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적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외적 충격뿐일 것이다. 만일 갑자기 외국의 엘리트들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면, 특정 국가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제한할 매우 강력한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법적 확실성, 개인의 권리, 민주적 영향력 등을 아래쪽으로 넘기고 협의에 참여하는 집단의 범위를 넓히고 일반 신민들에게 법적 참여권을 주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신민들이 현 정권에 이해관계가 있는 존재들로 바뀌기를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특정 국가의 엘리트들이 외국의 엘리트들에게 협력하거나 예속된다면, 그들은 비참여적·비재분배적·규제적·억압적 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강한 유혹에 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투르게 흉내만 낸 법의 지배가 출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 그것은 극소수에게만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고 극소수만이 법적 도구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제1장 법의 지배의 계보 中

어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서 사랑했다지만 나는 그의 어리석음에 치를 떨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다면 권력을 시장에 제도적으로 넘긴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다. 상식이 통하는 정상국가를 향한 열망을 현실에 구현하고 싶었다면 그는 더 현명했어야 한다. 소탈한 사진 몇 장을 남겼다고 그를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기억한다면, 정작 기업에 불리한 정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그를 미워하는 기업인들만큼 멍청한 놈이 될 뿐이다.

이 나라 ‘메인스트림’은 어떠한 종류의 자기 제한도 거부하고 있다. 대통령직과 국회 과반수 의석으로도 주류가 범람하는 꼴을 다듬는 데 실패했다. 사회에 뿌리내린 기반 없이, 선거로 획득한 권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저 세찬 물길을 길들이는 방법은 차근차근 조직을 형성하는 방법뿐이다. 당신이 휩쓸려 간 과정을 낱낱이 되새기며 둑을 쌓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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切齒腐心

1.

국가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집행위원회로 부리는 ‘人’을 元首로 선출한 나라에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까닭을 모르는 앵무새 무리가 어쨌거나 폭력은 나쁘다고 옹알이는 꼴이 진귀하지는 않았다. 용산에서 사람 다섯이 자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법절차의 원칙이니 비례의 원칙이니 하는 올곧은 말들을 장님처럼 더듬어 보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름다워서 무서웠다. 어떻게 일어난 영문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어날 때마다 지금 이 충동을 이겨내야 합격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어느 생각이 魔軍인지 모를 일이었다.

행정법은 경찰법에서 비롯하였다. 법으로 국가의 경찰력 행사를 제한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상법만큼 사람이 몰리는 전공은 행정법이다. 재건축 규제에 해박하면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아득한 망각과 각광의 간극에 행정법의 기원과 현재를 동시에 아우르는 잿더미가 들어앉았다. 누가 지어낸 사례도 이보다 무참하거나 광막하지 않다. 이래저래 교과서는 현실 앞에 초라하다. 이제 그냥 이런 주제 앞에서는 “보상을 받았으니 진압은 정당했다.”라고 써야 하지는 않을까. 국민이 법을 지키는 게 법치라면서, 소크라테스가 호명되는 나라에서는….

2.

여름 시험장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데 다시 실패했다. 당연한 결과다. 준비에 몰입한 기간부터 짧았다. 민법 교재를 한 번 읽느니 마느니 하다가 9월을 맞이했다.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 두 달 동안 매일 오전 여덟 시부터 열한 시까지 책상에 붙어 있었고 오가는 지하철에서 최신판례와 조문을 읽었지만, 이 기간에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니었다. 시험 당일이 임박한 시점에 확인하지 않았던 내용은 시험장에서 맞닥뜨리면 찰나 동안 정확하게 可否를 판단할 수 없다. 공들여 읽어둔 교재가 없어서 문제 푸는 연습만 되풀이한 탓에 마지막에 정리한 내용의 폭이 좁았다. 양을 줄여나간다는 말에 사로잡혀, 문제를 풀면서 틀린 부분만 반복해서 들춰본 게 실책이었다. 최후의 일주일 동안 출제 가능한 내용을 모두 읽어두어야 한다.

다시 내년 1차 시험을 준비한다. 한 해를 오롯하게 바치고도 낙방하거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험에 열중하지 못한다면 이 시험에 합격할 자질이 없는 것이다.

3.

나는 LSD 중독자이다. 게으르고(lazy), 성긴 논리로 자신을 비호하며(sophistic), 번다한 주제에 대해 관심만 많다(dilettante). 이것들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일’에 매진하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 시간을 살해하는 데 탐닉하지 않고, 건조한 일과를 경작하는 일은 체제에 투항하는 짓과 무관하다.

텍스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는 착각은 자존의 근거가 아니라 오만의 증거이다. 태만의 대가를 한탄하거나 타인을 조롱하며 위안을 얻으면 안 된다.

여력이 있으면, 정의와 형평을 궁리하기 전에 <<니코마코스 윤리학>>부터 읽을 노릇이다. 문화연구를 배워서 전자오락 비평을 해보겠다거나, 특정 세부 전공 분야를 골라 최신의 이론을 세워보겠다는 종류의 망상은 깨끗하게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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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009년 2월 20일 아트레온토즈에서 열린 <<인문학 스터디>> 특별강연 중 강유원이 맡은 전반부를 정리한 글이다. 책을 활용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었다.

사람들이 어떤 사태에 대해 말할 때 이미 저마다 지닌 신념 체계에 입각한 경우가 많다. 그보다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인문학은 어떤 사태에 부딪혔을 때 그 사태를 해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무념무상의 태도로 바라보았을 때 사태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적 균형감각을 갖추려면 이 책에 소개된 영역들에 대한 지도를 그려야 한다. 이 책에는 최신의 이론이 없지만, 단어 하나조차 허술하게 쓰인 부분이 없다. 예컨대 36쪽을 보면 <<일리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해 놓았다.

더욱이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의 사령관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령관은 아가멤논이다. 아킬레우스는 무기를 다루는 데에서는 분명 가장 뛰어나지만 여러 작은 장군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서구 문학의 기원이 최고 지배자가 아닌 모범적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됨으로써, 서구 문명은 모범적인 황제들이나 신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고대 또는 초창기의 문학을 보유한 다른 문명과 구별된다.

우리는 또한 <<일리아스>>에서 서구 사상의 또 다른 독특한 측면을 발견한다. 그것은 적, 특히 전체 서사시에서 가장 귀족적인 인물이라 할 용감한 트로이인 헥토르를 동정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애처롭도록 가정적이고 행복한 장면들이 최후를 맞는 도시 트로이에서 펼쳐진다. 이 모든 것이 불타고 난도질될 것을 깨닫는 순간, 고대 그리스인처럼 우리 역시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시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가 서사시의 첫 행이다. 위대한 전사의 용기이자 그의 영웅적 행동의 뿌리인 이 분노는 결국 영웅이 파멸하는 원인임이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일리아스>>의 특징인 개인주의, 적에 대한 배려, 한 인간의 장점이 그 인간의 단점이 된다는 모순을 이보다 간결하게 잘 정리한 문건이 없다. 이런 식으로 40쪽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차이를, 63쪽에서는 희랍철학이 무엇을 다루는지, 74쪽에서는 지성사와 철학사의 과제에 대해 적어 놓았다. 책 내용에 초점을 맞추면 인문학에서 다루는 영역 대부분에 관한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본문을 충실하게 습득한 다음에는 도서 목록을 참조하면 된다. 도서 목록은 크게 원전과 참고도서로 나뉘고, 참고도서는 다시 ①해당 영역 전체를 개괄하는 입문서, ②해당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사책, ③세부적인 주제에 관한 입문서와 ④연구서로 구별된다. 참고도서의 경우 ①개괄 입문서, ②개괄 역사책, ③세부주제 입문서, ④세부주제 연구서로 넘어갈 때마다 짧은 밑줄로 구별해 두었다. 종류별로 읽기 쉬운 책부터 차례로 나열하였으니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 개괄 입문서와 역사책은 기본적인 내용이고, 세부주제 입문서와 연구서는 전문적인 내용이다. 인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세부주제 연구서까지 모두 읽어야겠지만, 다른 영역 공부를 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내용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다.

한국적인 것에 대해 연구해보려면 이 책에서 다룬 주제를 15년 정도 걸쳐 모두 공부해봐야 한다. 세간에는 차이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이나 정통에 대한 까닭 없는 반항이 만연해 있지만, 최신이 최선은 아니다. 몸으로 하는 것은 단계를 건너뛰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데, 정신적인 것은 그럴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정통에 대한 추구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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呪文

우연한 계기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읽었다.

1부 ‘河口’의 배경인 江津은 낙동강 하구에 자리 잡은 마을인데 이곳에 흘러들어온 주인공의 형은 골재를 캐다 판다. 현재 부산광역시에서 낙동강 서쪽은 강서구이고, 강에서 바로 동쪽에 사하구, 사상구, 북구가 최하류에서부터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沙上區에서 13년을 살았던 탓인지, 모래 장사꾼 얘기가 새삼스러웠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훈장 삼아 권력의 단물을 맛본 인간들에 대한 예언 같은 주인공의 자기검토는 신랄하다.

기껏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소년시절의 충동적인 모험의 연장이며, 추구하는 것 또한 영광과 승리의 동참자로서 나누게 될 자랑스러운 기억 따위나 아닐까. 막연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지성의 정신적인 자위행위거나 우리도 언젠가 빼앗기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노라는, 장차 혜택받는 계층에 끼어들었을 때의 변명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돈 주고 산 책이 아니다 보니 다른 사람이 강조해 놓은 부분도 보게 되었다.

다만 싫은 것은 지성인 내지 대학생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획일주의나 정의와 양심과 용기는 참여하는 쪽만이 독점하고 있다는 식의 흑백논리요. 사회의 의식도 문화의 일부일진대, 그 다양성은 상호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오. 거리로 뛰어나가 기성세대의 불의와 부패를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이나 강의실에 남아 학문적 고구(考究)나 예술적 연마에 힘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뜻이오.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선택하는 의식의 순수함과 실천의 성실함일 거요…….

1981년, 부채의식에 시달렸을 서생들에게 이런 문장은 어떤 위무를 제공했을까. 어쨌거나 나는 진정성을 운운하는 글을 읽지 않듯이 순수와 성실을 떠드는 자를 믿지 않는다. 그러한 가치는 몸으로 드러날 뿐이다. 가끔 언론에 실리는 이문열의 말을 볼 때마다 마루야마 겐지의 삶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썼다면서 인용되는 글귀는 꽤 자극적이다. 실은 이 문장에 홀려서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입시를 저런 태도로 대하였다. 아직도 수험생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빙충맞지만, 나도 이제 나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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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金期

손민한과 이대호를 제외하면 이름이라도 아는 선수 하나 없는 팀이 페넌트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반기는 나를 발견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침울해졌다. 세상을 세로로 나누는 감정에 기반을 둔 대립 구도를 두고 즐거워하다니 망측한 일이다. 더는 어떤 국가대항 운동경기 중계를 보아도 흥겨워하지 않게 되어 웬만큼 수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간혹 내 입에서 삐져나오는 방언의 흔적처럼, 이 지저분한 사고방식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해태제과의 상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꼬마는 이제 서울 생활 중에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가끔 뻔뻔하게 느껴진다. 어떤 지방 사람들은 스스로 본래 말투를 버리는데, 저들은 저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해 본적을 바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저렸다. 제 말씨와 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현존하는 대한민국. 옛날 강준만이 뱉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발언을 이제는 아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다고, 감히 말해도 괜찮을지….

언제부터인가 동향 출신이면서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다른 팀의 팬이 부러웠다. 그들이 그 팀을 응원하는 데는 연고가 아닌 다른 까닭이 있을 테니. 세상을 가로로 나누는 기준에 기원을 둔 스포츠 팀이 있다면 나도 관심을 쏟을 수 있겠지만, 한국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스날처럼 노동조합에 연원을 둔 팀이 없다. 지역감정이라 해도 FC 바르셀로나를 성원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의 심정은 납득이 된다. 해태 타이거즈가 승승장구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호남 사람들도 비슷한 심사였을까.

도대체 왜 나는 ’우리’가 이겼다는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걸까. 편한 마음으로 롯데를 아끼던 시기를 되새겨 보니 짐작이 간다. 한국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92년은 걱정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 삼당합당이야 어쨌든 문민정부가 들어섰고, 노동자 실질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도산하지 않은 신발제조회사에 근무하면서, 공장에 위장취업한 학생운동가를 적발하기도 했던 촉망받는 중간간부였다.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몰락할 산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견실한 중소기업의 이사 정도까지 지위가 올라갔을 테고, 어머니는 허리둘레 24인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삶을 누리셨을지도 모르겠다. 아, 진정으로 ‘달콤한 가정’이라는 중간계급의 꿈이 허투루 들리던 때가 아니었다.

욕구를 대부분 억누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보였던 호시절을 호출했나 보다. 잠실 야구장에 한 번쯤 찾아 가볼까 궁리해 보기도 했지만, 근심 없던 유년을 추억하는 짓은 정신을 퇴행시킬 뿐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과거를 향수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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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生獸

1.

지난주 어느 날, 귀가하니 거실 TV에 어떤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보통 동생이 토크쇼를 보고 있기 마련인데, 베이징 올림픽 중계 때문에 방영 시간이 미루어진 듯했다.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니 돈 잘 버는 남자 사업가가 유명 여배우와 이혼 소송을 벌이는 줄거리였다. 이어지는 법정 장면에서 나는 경악했다. 온갖 기자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작가는 최근 간통죄 위헌제청신청을 했던 여인의 재판을 다룬 연예정보 프로그램도 보지 못했나? 가사재판은 비공개가 원칙이라, 취재진이 법정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던데.

판사가 읽은 판결주문도 가관이었다. 이혼하려는 부부가 혼인 전에 만약 앞으로 이혼하게 된다면 남자 재산을 떼주기로 한 부부재산계약을 맺었다면서, 그걸 근거로 공유물 가운데 500억을 분할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활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민법제도라 할 수 있는 부부재산계약을 어디서 찾았는지 용하기는 하다만, 아쉽게도 이 제도는 혼인 관계가 아무런 문제 없는 동안 부부가 취득하는 재산에 관하여 법에서 정한 부부별산제와 다른 내용으로 규율할 수 있도록 사적자치의 영역을 가족법에서 넓혀 놓았을 뿐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남편이 재산을 취득한 과정에 아내가 기여한 바가 있어야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 가운데 아내가 제 몫을 주장할 수 있는 법인데, 그저 부부재산계약을 들먹이며 재산을 뜯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어지는 상황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패소한 남자가 대표로 있는 법인이 무슨 자산운용회사인 듯했는데, 판결 보도가 나가자마자 투자자들이 돈 내놓으라면서 들이닥쳤다. 펀드런이라는 친절한 자막까지 뜨면서. 박현주가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 500억을 물게 되었다고 미래에셋에 돈 맡긴 사람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생기겠는가. 개인과 법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작가라고 볼 수밖에.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경영학 강사가 가르치는 나라에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제도에 대한 이해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법학개론 같은 쓸데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찬 책 말고, 근대 법학에 대한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규범의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2.

일곱 번째 학기 성적을 확인하고 꽤 오랫동안 우울했다. 교재를 읽고 외워서 답안지에 쏟아내는 능력이 그리 출중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단순암기능력은 비슷한 수험능력을 지닌 집단 가운데 잘해봐야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준비하는 시험에 과연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수험생은 압류와 가압류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관련 판례를 암기한다. 그러고도 2차 시험까지 붙을 수 있는 시험이다. 나는 그게 되지 않는다. 외워야 할 까닭이 없으면 자극을 받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를 낑낑대며 머릿속에 구겨 넣는 작업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시험이 끝나면 밑 빠진 독에 채웠던 물처럼 빠져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체화되는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공부를 하며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심리적으로 금지된 욕망을 갈구하는 짓에 불과할 뿐이다. 나처럼 나태한 놈은 공부가 주업이 되면 또 도망치고 말 것이다.

3.

이동통신사와 맺었던 계약을 해지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생활에 심대한 지장이 생기고, 직접 버는 돈으로 이용료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연락할 일이 있는 지인들은 이곳 우측 최상단에 있는 게시물 말미에 첨부된 전자우편주소를 활용해 주시길. 여기까지 올 생각이 없는 사람들과는 교우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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直接 民主主義의 그림자

어느 대학교에 원서를 넣으면서 첨부한 자기소개서에는 돌이켜보면 심히 낯부끄러운 책 다섯 권을 적어 놓았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고등학생 권장도서 목록에 쑤셔 넣은 교수에게 저주 있으라! 책 몇 권으로 바뀐 삶은 얄팍하기 그지 없겠지만, 지금 내 인생의 책을 고르라면 딱 두 권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한 권이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사회학』이다.

로베르트 미헬스는 독일에서 태어나 사회민주당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활동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과두제의 철칙을 말한다. 근대에 탄생한 어떤 조직도 관료제로 말미암아 이 철칙에 속박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정당조차 예외는 아니다. 정당 이론을 펼친 학자 가운데 사회주의 정당에 직접 투신했던 유일한 사람인 미헬스는 대중이 지도자에 이끌리는 경향을 분석하며 대의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민중이 전력을 다하여 권력을 교체한 뒤 만족해하는 것은 가치 “희극”에 가깝다. 그들은 또다시 자기들이 뽑은 지도자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하며, 또다시 “잘못 뽑았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주기의 선거를 위해 이를 갈며 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는 ‘국가지도자의 아이러니’다.

대의제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 오늘날 한국 상황에서, 역시 대의제는 직접 민주주의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이 대의제를 부정한 루소의 일반의지 이론을 채택한 결과로 자코뱅 독재가 나타났던 과거를. 2월 혁명의 열매를 삼켰던 보나파르트의 조카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을 잠재운 사나이를.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거꾸러졌던 과정을. 대중의 숭배욕구는 끊임없이 지도자를 소환한다.

21세기에 한국 대중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단에 열광했고, 장갑차에 치인 소녀를 추모했고, 탄핵당한 대통령을 지켜냈고, 황우석과 D-War를 옹호했으며, 미국 쇠고기 수입 협의에 분노한다. 희대의 부동산 임대업자가 물러난 자리에는 독재자의 망령을 팔아먹는 선거의 성처녀가 등극하게 된다. 나는 다시 되뇐다. 인민을 기만하는 파시스트보다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가 낫다고. 포퓰리스트는 기본적으로 대의제의 틀 안에 갇혀 있지만, 대중의 직접 동의를 통해 출현하는 파시스트는 대의제에 구속당하지 않는다.

최장집이 노무현 정부를 지켜보며 권력 분립론이 단지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던데, 나는 요즘 동일성 민주주의론에 대한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의제를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배부른 소리라고 간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이론은 역사에 기반을 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를 지배하지 않고, 위임받은 자가 위임한 자들을 지배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역사가 기다릴까. 정당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대의제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내놓은 미헬스는 말년에 무솔리니 밑에서 봉사하다 죽었다.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직접 민주주의도 지선한 가치가 결코 아니다. 불발에 그쳤지만 한국에서 최초로 주민소환제를 작동시킨 원인은 무엇이었나? 혐오 시설 건설로 내려갈 집값 걱정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제도에 대한 발랄한 상상보다, 인민과 고통을 함께하되 인민의 욕망을 넘어서서 죄수의 딜레마를 깨뜨릴 희망의 윤리학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절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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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 Empti

1. Actio의 의미

실체법과 절차법이 분화된 근대 시민법에서는 실체법에서 구체적으로 개별 권리를 규정하고, 분쟁이 생기면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訴權으로 절차법에 따라 소송을 제기하여 각자의 권리를 확인받는다. 로마법에서는 私權과 訴權이 분리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법률관계마다 개별적인 actio가 존재했다. 로마 법학자는 어떤 사건이 있으면 오늘날처럼 실체법상 권리 개념으로부터 접근하지 않고, 어떠한 actio가 있는지를 고민하였다. 즉, 로마인들은 권리를 소송에서 관철할 수 있는 법적 보호를 받는 지위나 자격으로 보았고, ‘누구에게 actio가 인정된다’는 표현은 ‘누구에게 권리가 있다’는 의미였다. 때문에 로마법을 訴權法體系라고 부르는 것이다.

2. 賣買(emptio venditio)와 actio empti

로마법상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은 소유권이전의무가 아니라 목적물의 완전한 점유(vacua possessio)를 매수인에게 이전할 의무를 부담하였는데, 이를 이해하려면 매매계약이 생겨난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로마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인 토지와 노예 및 가축은 手中物(res mancipi)로서 市民法(ius civile)의 엄격한 요식행위인 掌握行爲(mancipatio)나 法廷讓渡(in iure cessio)로만 취득할 수 있었다. 시민법은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므로 외국인은 이러한 시민법상 물권양도행위를 할 수 없어서 로마 시민에게 목적물의 소유권을 이전시킬 수 없었고, 그 결과로 로마인과 외국인 사이에 萬民法(ius gentium)상 매매제도가 발달하였다.
手中勿을 단순히 引渡(traditio)한 경우 목적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으므로 매수인은 使用取得(usucapio)으로 소유권을 취득하여야 했고, 매도인은 매수인이 소유권을 취득할 때까지 담보책임을 부담했다. 외국인이 로마인에게 手中物을 매도할 때는 이렇게 처리되었으나, 使用取得도 로마인에게만 적용되는 제도였기 때문에 로마인이 외국인에게 手中物을 매도할 때에는 시민법이 아니라 名譽法(ius honorarium)에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명예법은 政務官(magisratus)이 직권행사를 통해 발달시킨 일련의 법제도로서 시대에 맞지 않는 시민법을 보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手中物과 달리 非手中物(res nec mancipi)은 매도인의 단순한 인도로써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살펴보았듯이 로마법에는 일반적 소권(actio generalis)이 없었기 때문에, 계약의 이행을 청구하기 위해서도 개별적인 actio가 필요했다. 매매 계약을 맺은 당사자 사이에서 매수인은 actio empti로, 매도인은 actio venditi로 상대방에게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쌍무계약의 당사자 간에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을 고유소송이라고 불렀다. 매매의 주된 효력은 매도인의 점유이전의무와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였으므로, 매수인은 actio empti로 목적물을 점유할 권리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賣渡人의 擔保責任과 actio empti

(1)追奪擔保責任
위에서 매도인은 매수인이 목적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때까지 담보책임을 부담한다고 기술하였는데, 이러한 담보책임은 애당초 매매계약의 효력이 아니었다.
장악행위로 목적물의 소유권이 이전된 뒤 목적물에 爭訟이 발생하면 매도인은 소송에 참가하여 매수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이를 actio auctoritatis라 했는데, 매매법상의 法定責任이 아니라 12表法에 기초한 소권이었다. actio auctoritatis는 장악행위가 없었다면 적용될 수가 없으므로 매수인은 追奪(evictio)에 대비하여 로마법에서 널리 쓰인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言語契約인 問答契約(stipulatio)으로 매도인에게 추탈담보책임을 보장받았다. 거래가 장악행위로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추탈담보계약도 맺지 않았다면 매도인은 아무런 책임을 부담하지 않았다.
매수인이 목적물을 제3자에게 빼앗겼는데 담보계약이 없었다고 매도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면 형평에 어긋나므로, 적어도 古典期부터 이 경우에도 actio empti가 인정되기 시작했다. 유스티니아누스帝 시대부터는 추탈담보책임이 매매계약의 효력으로 인정되어 매도인의 책임으로 일반화되었다. 이처럼 actio empti는 추탈담보책임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瑕疵擔保責任
物件의 瑕疵擔保責任도 처음부터 매매의 효력으로 인정된 책임이 아니었다. 양도인이 하자담보에 관하여 言明(dictum in mancipatio)한 경우에는 하자담보책임을 졌고, 古法時代부터 추탈담보책임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사이에 문답계약으로 매도인이 물건의 하자에 대하여도 담보책임을 부담하는 거래관행이 존재했다. 이러한 담보책임약정이 없으면 매수인은 보호될 수 없었다.
共和政末이 되면 물건의 하자담보책임에 있어서도 사정이 바뀌기 시작한다. 로마시내에서는 高等按擦官(aediles curules)이 노예와 가축의 시장거래에 대하여 경찰감독권과 재판권을 관장하였는데, 보통 외국인이 노예를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들의 평판이 좋지 않아서 매수인에게 큰 위험이 따랐고, 매수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按擦官告示(edictum aedilium circulium)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노예와 가축의 매도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목적물의 숨은 하자를 매수인에게 告知하여야 했고, 고지되지 않은 하자에 대해서는 매매 당시에 매도인이 이를 알지 못했어도 책임을 져야 했다. 이 책임의 효과로 매수인은 해제권(actio redhibitoria)과 대금감액청구권(actio quanti minoris)를 행사할 수 있었고, 유스티니아누스帝는 안찰관고시의 적용범위를 모든 물건의 매매에 확장했다.
또 이 시기에 이르면 매도인이 하자가 없다고 보증하였거나, 명시적인 언명이 있었거나, 악의로 하자를 은폐한 경우 물건의 하자 때문에 매수인에게 발생한 손해를 actio empti로 배상받을 수 있었다. 안찰관의 담보소송과는 달리 매도인에게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했으므로 행사요건이 엄격했다. 그러나 actio empti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고 청구기간이 훨씬 길어 안찰관소권보다 매수인에게 유리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帝는 시민법과 명예법을 통합하면서 안찰관의 고시규정을 Digesta에 채용했는데, 매도인의 고의나 과실을 불문하고 원고가 입은 실손해(quod actoris interest)를 actio empti로 배상받을 수 있고, 계약해제권도 actio empti에 편입되었다. 즉, 매매의 효력으로 하자담보책임이 당연히 인정되어 손해배상청구권, 해제권, 대금감액청구권이 하나의 법리로 확립된 것이다.
이처럼 actio empti와 함께 발달한 담보책임제도의 연혁을 살펴보면, 담보책임을 채무불이행책임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법정책임으로 창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담보책임의 본질이 채무불이행책임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4. 原始無效인 賣買와 actio empti

근대법과 동일하게 로마법에서도 계약의 목적물이 자연계에 實在(in rerum natura)하지 않으면 계약은 무효였다. 로마법에서는 현존물이 아니라 장래에 취득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에 대한 매매(emptio rei speratae)도 가능하였고, 심지어 매도인이 물건을 취득하지 못해도 매수인이 대금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매매(emptio spei)도 할 수 있었으나, 실재하지 않는 물건에 대한 매매는 성립되지 않았다.
매매가 무효라면 actio empti를 논할 여지도 없는데, Sabinus派는 체약자 간에 설정된 일정한 관계에 신뢰보호원칙을 적용하여 actio empti를 인정하였다. 로마에서는 상속재산(hereditus)도 매매의 대상이었는데, 상속재산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출한 비용의 배상을 actio empti로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D.18.4.8). Procules派는 이 경우 非債辨濟의 不當利得訴權(condictio indebiti)을 인정하였을 뿐이다(D.18.4.7). 이 학파 대립은 Jhering이 계약체결상의 과실(culpa in contrahendo) 이론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물건처럼 神法상의 物件(res divini iuris)이나 公有物(res publicae) 같은 非融通物에 대한 매매도 무효였는데, 유스티니아누스帝法에서는 매수인이 목적물을 융통물로 잘못 알고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actio empti가 인정되었다. 이처럼 actio empti는 시대가 흐르면서 인정되는 범위가 점차 확장되었고, 매매에서 매수인을 보호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玄勝鍾·曺圭昌, 로마法, 1996, 法文社.
최병조, 로마법강의, 1999, 博英社.
胡文赫, 債權과 請求權의 관계, 民法註解Ⅷ,1995, 博英社.
南孝淳, 擔保責任, 民法註解XⅣ, 1997, 博英社.
郭潤直, 債權各論, 2003, 博英社.
梁彰洙, 原始的 不能論, 民法硏究 第3券, 1995, 博英社.
http://lawlec.korea.ac.kr/law/?p=38, 최근확인일 2008.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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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講義

다섯 시에 비교법입문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세 시부터 시작한 최장집의 마지막 학부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 큰 강당이 빼곡하게 찰 만큼 사람이 많았던 탓에 강의 자료를 챙기지 못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 잠깐 얻어 보았는데, 자신이 직접 설명한 학문적 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 관념론에 대한 언급이 의외였다. 또 자신은 실질적 민주주의론자가 아니라는 언급도 눈에 띄었다.

결론에서 한국 대학은 외형적인 면은 서구 대학과 비견할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영혼이 없다고 비판했다.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이 꼴이라 사회 전체가 낙후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개강, 휴강, 종강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학부 시절을 회상하면서 요즘 학부생들에게 차마 무엇인가를 요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다만 영어 말고 유럽어 하나, 동아시아어 하나를 더 익혀두라는 정도. 언젠가 독일어와 일본어를 독해 가능한 수준까지 익혀 보아야겠다는 결심이 강화되었다. 결국 좋은 정당과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장래에 법학에서 절차주의가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되리라는 예측과 호응 되는 측면이 많다고 느꼈다. 만약 내가 학자가 될 수 있다면, 절차주의에서 자본과 권력이 절차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구조를 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은데.

예전 세미나 모임 사람들을 만나 밥과 술을 먹고 귀가했다. 또래 중에 아직도 학부생인 놈은 이제 나밖에 없는 듯. 한 친구는 프레시안 기자가 되었다고 하고, 한 선배는 mbn에 취직했다고 한다. 곧 NYU로 나간다는 선배 소식도 들었고. 그러고 보면 거기서 알게 된 어떤 선배가 모 일보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다른 경로를 통해 최근에 듣기도 했다. 그건 좀 충격이었다. 예전에 거기 입사했다고 들은 선배와는 달리, 당 활동에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는데.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사실과 사건이 개입했겠지.

오랜만에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난 덕인지,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착상이 떠올랐다. 근대민법의 근본원칙은 인격 동등, 소유권 절대, 계약 자유, 과실 책임으로 정리된다. 이 원칙이 각각 무엇을 타파하려고 등장했는지 파악해야 개념이 쉽게 잡힌다. 근대 자연법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법적으로 고민한 끝에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인격이 동등하다는 의미는 독자적인 인격이 인정되지 않았던 노예나 농노 제도를 철폐한다는 것이고, 소유권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재산에 붙어 있던 각종 관습적인 권리를 일소한다는 것이다. 근대법은 길드 등에 얽매여 있었던 상인에게 계약을 자유롭게 맺을 수 있게끔 하였고, 이제 개인은 자기가 잘못한 만큼만 책임질 뿐 연좌제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좋은 말로 포장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시민 계급을 위한 원칙이다. 부르주아를 번역하면 시민이고, 시민법은 유산계급에 적용할 목적으로 제정되었지 투표권도 없는 노동자에게까지 적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고용에 관한 규정이 단순하기 그지없고,  신분제 폐지도 공장 노동자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장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일종의 이념형이다. 실제로 이 원칙들이 자본주의 발달에 얼마나 기여하였을까? 프랑스 혁명 당시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자산 보유 형태가 이미 유사하였다. 지주가 자본가의 적이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시절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인가? 또 장하준은 자유방임주의가 자본주의 성장에 필수적이기는커녕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자유무역이 영국에서 실제 정책으로 펼쳐지기 바로 전까지 구빈법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을 통하여 한반도에 근대법이 계수되면서 각각의 원칙들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조선의 신분 제도 폐지는 근대법 계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의용민법 시행으로 사라진 조선의 관습권은 무엇이며,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과실책임의 원칙은 얼마나 엄격하게 준수되었는가? 대한민국 성립 후 이 원칙들의 작동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전통 지주 계급은 근대법 시행에 따라 어떻게 변모하였으며, 한국에서 자본 축적에 근대법 원칙들은 이바지한 바가 있는가?

경제이념으로서 자유주의가 후대에  강조된 측면이 강하다면, 법이념으로서 자유주의에도 비슷한 비판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유적 자유주의 아래 다시 소유권 절대를 주장하는 입장의 기반을 크게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저작권 침해 행위를 배타적 소유권에 입각하여 마냥 강력하게 규율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도 찾을 수 있을 테고.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P2P나 웹 하드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려 드는 족속의 심리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밑바탕에는 호혜의 원리와 인정 욕구가 존재한다. 오늘날 많은 임금노동자가 영세자본가 노릇을 하는 상황에서 소유 제도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아, 그런데 이제부터는 지하철에서도 사례연습집을 읽을 계획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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